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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 거점 마련 후 국내 조직과 연계해 대량 밀반입
우두머리 김형렬이 박왕렬과 최정옥에게 마약 공급
동남아시아를 거점으로 국내에 마약을 밀반입한 조직의 배후가 모두 드러났다. 일명 ‘동남아 3대 마약왕’으로 불리는 김형렬(49·닉네임 사라 김)과 박왕렬(46·닉네임 전세게), 탈북민 출신 최정옥(여·37)이다.
이 중 김형렬이 우두머리다. 김씨는 베트남에서 활동하며 박씨와 최씨에게 마약을 공급한 최상선 총책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마약 유통을 공모한 것이 아니다. 각자 동남아로 진출해 현지에서 마약조직을 구축하면서 연결됐다.
김씨가 박씨와 최씨에게 마약을 공급하면 이들은 국내에 있는 조직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유통시키면서 규모를 키웠다. 경찰청은 수년간 현지 경찰과의 공조를 통해 이들을 추적해 왔고, 김씨를 끝으로 모두 검거했다. 악명을 떨치던 마약왕이 모두 검거됐지만 국내로 마약이 대량 밀반입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김형렬은 2018년 10월11일 베트남으로 출국한 후 호찌민에서 거주했다. 이듬해인 2019년 4월부터 SNS를 통해 필로폰과 케타민 등 마약을 국내로 유통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텀블러와 트위터를 통해 마약류 판매 광고를 진행하다가 텔레그램에 집중한다. 이때부터 ‘사라 김’ 등의 닉네임을 사용하며 엄청난 양의 마약을 국내에 유통시켰다. 자신이 직접 마약을 투약하기도 했다.
동남아 마약 업계의 거물로 성장한 그는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의 박왕렬과 탈북자 출신 최정옥을 하부조직으로 끌어들이면서 국내 마약 공급의 최상선이 됐다. 김씨는 마약류 판매를 위해 운반책(속칭 ‘드라퍼’)들에게 마약류가 숨겨져 있는 좌표를 제공하고, 베트남에서 구매한 마약류를 국제우편·여행객 등을 통해 국내로 밀반입했다. 김씨의 지시를 받은 드라퍼들은 수도권 지역 주택가 우편함, 전기 단자함, 상가 화장실 등에 마약류를 은닉했다.
김씨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포통장을 개설하고, 매수자들에게는 제3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제공했다. 대금은 국내 조직원을 통해 계좌로 송금받았다. 김씨는 자신의 아들까지 끌어들여 마약 판매금으로 비트코인을 사는 방식으로 돈세탁을 시켰다. 지금까지 그가 국내에 유통한 마약류만 무려 10만 명분에 달한다.
국내로 밀반입된 마약의 유통 경로를 추적하면 최상선에 김형렬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김씨는 서울을 포함한 전국 경찰의 추적 대상이 됐다. 2019년 6월 경찰은 김씨를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에 올려놓고, 베트남 공안과 공조수사를 벌였다. 이때부터 경찰과 김씨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김씨는 주기적으로 이사를 하면서 주거지를 옮겨 다녔다. 주로 베트남 내 인도네시아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지냈다. 또 위조여권을 만들어 신분 세탁을 시도하는 등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2022년 7월17일 호찌민 중심가에 있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베트남 공안과 공조수사한 한국 경찰에 검거된다. 그의 침대 옆에서는 장검이 나왔다. 국내로 송환된 김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하고, 80시간의 약물중독 재활 프로그램 이수, 6억8000여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상선으로 범행을 적극적·주도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며 “증거로 봤을 때 피고인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 모두 유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공범으로 기소된 그의 아들에게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한국인 남녀 3명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시신으로 발견된 필리핀 사탕수수밭과 범인 박광렬 ⓒ연합뉴스·
한국인 남녀 3명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시신으로 발견된 필리핀 사탕수수밭과 범인 박광렬 ⓒ연합뉴스·
박왕렬은 필리핀에 거주하며 수산물유통회사를 운영했다. 2016년 초 박씨는 국내에서 유사수신 업체 회원이던 친누나의 소개로 남녀 3명을 소개받는다. 이들은 200여 명을 상대로 150억원대 투자 사기를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유사수신 업체 경영진이었다. 현지에서 은신처를 찾던 중 박왕렬과 연결된 것이다.
박씨는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7억원대의 은닉 자금을 받았다. 그는 이 돈으로 카지노 사업을 벌였다. 박씨는 투자수익금을 나눠주지 않고, 혼자 차지하기 위해 살해를 계획한다.
같은 해 10월11일 새벽 필리핀 수도 마닐라 북쪽 팜팡가주의 한 사탕수수밭에서 40~50대 남녀 3명이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되는데, 신원조회 결과 박씨가 은신처를 제공한 남녀 3명이었다. 경찰청은 과학수사팀을 포함한 수사팀을 현지에 파견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도피생활 중이던 피해자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경찰은 피해자들의 행적을 탐문하다 박왕렬과 공범인 김춘수의 존재를 파악했지만 그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범행을 부인했다. 이런 사이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박씨는 사건 발생 이틀 만에 잠적했다.
경찰은 박씨가 여자친구와 함께 지낸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행적을 추적하다 37일 만에 마닐라의 한 콘도에서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공범 김씨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범행을 자백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 생활고를 겪던 김씨는 박씨가 “1억원을 줄 테니 필리핀에 와서 사람을 죽여 달라”고 제안하자 필리핀으로 들어와 박씨를 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피해자들이 살해된 뒤 이들이 가지고 있던 100억원이 넘는 돈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점이다. 범인이 잡혔지만 범행 동기였던 돈이 사라진 것이다. 결국 사라진 돈의 행방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박씨는 현지 법원에서 징역 장기 60년, 단기 57년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그는 교도소에서도 VIP 대접을 받으며 황제 수감생활을 했다. 돈을 내고 개인실을 사용하고, 휴대전화도 자유롭게 이용했다. 이때 수감된 교도소에서 국내 마약 공급의 최상선인 김형렬과 만난다.
박씨는 김씨의 제안을 받고 마약 유통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수감 중인 상태에서도 마약 유통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다. 박씨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교도소에서 조직원들에게 마약 유통을 지시하거나 텔레그램에 접속해 마약을 유통시켰다. 실제 뜯어진 다리미 바닥에 마약을 숨겨 국내에 유통하려다 적발된 적도 있다.
박씨는 3년의 수감생활 중 두 번이나 탈옥에 성공한다. 총을 든 무장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감옥을 쉽게 나올 수 있던 것은 돈의 위력이었다. 교민들은 경찰이나 교도관 등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줬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첫 번째는 도주 기간이 길지 않았다. 두 달 만에 필리핀 북부의 한 아파트에서 다시 붙잡혔다. 이때 다량의 마약을 소지하고 있었다.
2019년 10월 두 번째 탈옥을 감행한 후 박씨는 도피생활을 하며 ‘마약왕’으로 성장한다. 박씨는 실명 대신 ‘전세게’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며 국내에 수백억대 마약을 유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국내 마약 유통조직의 총책인 이아무개씨(닉네임 바티칸 킹덤)를 조사하다 전세게라는 인물에 주목했는데, 그가 바로 탈옥한 박왕렬이었던 것이다. 박씨가 유통한 마약은 국내 조직을 통해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에게까지 전달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며 박왕렬의 존재가 국내에까지 알려진다.
박씨는 2022년 10월28일 필리핀에서 검거돼 현지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다. 국내에서 송환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의 공범 김씨는 국내로 송환돼 징역 30년을 선고받았지만, 박씨는 여전히 필리핀에 있다.
탈북자 출신 마약왕 최정옥이 캄보디아에서 검거돼 국내로 강제 송환되고 있다. ⓒ뉴시스
탈북자 출신 마약왕 최정옥이 캄보디아에서 검거돼 국내로 강제 송환되고 있다. ⓒ뉴시스
마약 대모가 된 탈북자 출신 최정옥
한국과 필리핀이 맺고 있는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르면 박씨는 현지에서 선고된 형의 집행이 모두 종료된 뒤에야 데려올 수 있다. 필리핀 정부가 임시 인도 조치에 합의해 주지 않는 이상 송환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2011년 탈북한 최정옥은 마약 유통을 생계 수단으로 삼았다. 그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생활하며 ‘최지은’이라는 가명으로 탈북자 등에게 마약을 판매했다. 2016년에는 마약을 투약하거나 판매한 혐의로 적발돼 수감생활을 했다. 최씨는 마약사범들이 수감된 일명 ‘향방’에서 마약과 관련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2017년 11월 출소한 그는 약 4개월 후 중국으로 출국한다. 북한산 마약을 들여와 국내에 유통시켰다. 2019년에는 본거지를 동남아로 옮겼다. 베트남 호찌민 초고층 고급 주택을 은신처로 삼아 한국인들로 구성된 마약 밀수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다. 동남아 현지의 마약 업자들과 손잡고 SNS를 통해 국내에 유통시켰다.
이 과정에서 2021년 7월에는 마약 소지 및 밀입국 혐의로 태국 경찰에 체포된 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이후 캄보디아로 도주했다가 꼬리가 잡힌다. 마약을 판 돈으로 카지노에서 도박하다 여권사진을 유출시키면서 경찰에 포착된다. 2022년 1월 검거돼 국내로 압송됐다.
이들 마약왕 세 명이 국내에 유통한 마약 규모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우두머리인 김형렬의 범죄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박왕렬의 국내 송환이 필수적이다.
법무부도 필리핀 정부와 계속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실제 송환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제는 박왕렬의 현지 마약 유통조직이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이전처럼 휴대전화를 이용해 마약 유통조직을 지휘할 수도 있다. 언제든 탈옥할 수도 있다.
박왕렬이라는 시한폭탄이 필리핀에 있는 한 언제든 국내로 대량의 마약이 밀반입될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박왕렬의 국내 송환 노력을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링크: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17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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